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약을 바꿔봤는데도 무기력이나 불면, 집중력 저하가 계속되면 “이제 약이 듣지 않는 우울증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앞으로도 좋아지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항우울제에서 기대한 만큼의 변화가 없었다고 해서 바로 치료저항성우울증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약을 사용했는지만큼 적절한 용량과 기간으로 치료했는지, 실제 복용이 꾸준히 이어졌는지, 증상이 어느 정도 달라졌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치료저항성우울증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치료저항성우울증은 주요우울장애에서 적절한 항우울제 치료를 반복했음에도 충분한 치료 반응을 얻지 못한 경우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치료저항성우울증에는 현재 모든 연구와 진료 현장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국제적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연구와 규제기관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준은 현재 우울 삽화에서 적절하게 시행된 최소 두 차례의 항우울제 치료에도 충분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때 치료의 적절성에는 용량과 기간뿐 아니라 실제 치료를 계획대로 지속했는지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약을 두 종류 먹어봤다’는 사실만으로 치료저항성우울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약물이 치료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조건으로 사용됐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항우울제를 두 번 바꿨다는 사실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치료저항성우울증을 설명할 때 흔히 ‘항우울제 2회 이상 실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치료 실패는 단순히 두 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다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먼저 치료 용량을 확인합니다. 충분한 치료 용량까지 사용하지 못했다면 해당 약물에 대한 반응이 제한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약물 이상반응 때문에 용량을 충분히 조절하지 못한 경우도 실제 약물 효과 부족과 구분해 살펴봐야 합니다.
치료 기간과 복약 지속성도 중요합니다. 치료 효과를 평가하기 전에 약을 중단했거나 자주 빠뜨렸다면 충분한 치료가 시행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NICE 역시 우울증 치료에 반응이 없을 때 개인·사회·환경적 요인, 다른 신체·정신건강 문제와 함께 치료 계획을 제대로 따르기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하도록 권고합니다.
결국 치료저항성 여부는 항우울제의 개수를 세는 것보다 각각의 치료가 적절한 조건에서 충분히 시행됐는지를 확인한 뒤 그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충분한 치료 반응은 기분만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항우울제 치료 반응을 확인할 때는 우울한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증상과 생활 기능의 변화를 함께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우울감은 이전보다 줄었지만 아침에 일어나기가 여전히 어렵고 일을 시작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면은 조금 안정됐지만 무기력이나 흥미 저하, 집중력 문제가 상당 부분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는 수면과 식욕, 에너지, 집중력, 흥미 저하와 함께 업무·학업이나 대인관계 같은 생활 기능의 회복 정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울 증상 척도 역시 변화의 정도를 비교하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점수 하나만으로 치료저항성우울증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약이 잘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이유도 확인합니다
항우울제를 사용했는데 증상이 계속된다고 해서 모든 경우가 같은 치료저항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치료저항성으로 판단하기 전에 치료 반응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복약이 일정하지 않았거나 이상반응 때문에 충분한 치료를 지속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진단이 증상의 전체적인 흐름을 충분히 설명하는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불안이나 수면 문제처럼 함께 나타나는 증상이 회복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NICE도 초기 치료 반응이 부족한 경우 이런 요인을 확인한 뒤 필요하면 진단과 동반 질환을 재검토하도록 권고합니다.
갑상선 기능 변화나 빈혈, 수면무호흡, 만성 통증, 과도한 음주, 복용 중인 다른 약물처럼 우울 증상과 비슷한 모습을 만들거나 증상 회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체적 요인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으면 치료 자체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상황까지 치료저항성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진단과 치료 과정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전 항우울제 치료 이력에서 확인하는 항목
치료 이력 정리는 현재까지 시행한 항우울제 치료가 충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먼저 어떤 항우울제를 사용했는지와 당시의 용량, 복용 기간을 확인합니다. 치료 중 약을 자주 빠뜨렸거나 중단한 기간이 있었는지, 이상반응 때문에 충분한 용량이나 기간을 유지하기 어려웠는지도 함께 살펴봅니다.
각 치료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감은 줄었지만 무기력이나 집중력 저하가 남았는지, 수면은 개선됐지만 업무나 대인관계 기능은 여전히 어려웠는지처럼 좋아진 증상과 남아 있는 증상을 나누어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과거 치료를 정리하면 단순히 ‘약이 듣지 않았다’는 표현보다 어떤 치료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쉬워집니다. 이후 치료 방향 역시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검토하게 됩니다.
치료저항성이라는 말은 치료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치료저항성’이라는 표현 때문에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지금까지 적절하게 시행한 치료에서 충분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현재의 치료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치료 반응이 제한적이었다면 먼저 이전 치료가 충분했는지와 반응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결과 실제 치료저항성이 확인되면 이후에는 약물 변경이나 강화요법, 심리치료와 비약물적 치료 등 다음 단계의 치료 접근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NICE에서도 치료 반응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치료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도록 권고합니다.
따라서 치료저항성우울증이라는 이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무엇을 얼마나 치료했고, 어떤 부분이 좋아졌으며, 어떤 증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정리하는 것이 이후 치료 방향을 판단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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