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출근하고 맡은 업무도 처리합니다. 회의에 참석하고 동료들과 대화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주말에도 예전처럼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도 공허하거나 무기력한 느낌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겉으로 유지되는 일상 기능과 실제로 느끼는 마음 상태가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감이나 다른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하고 있어도 우울감이 있을 수 있을까?
네.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고 해서 우울한 감정이나 흥미 저하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울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는 것뿐 아니라 평소 좋아하던 일에 흥미가 줄거나, 피로와 에너지 저하가 이어지고, 집중하거나 결정하는 일이 어려워지거나, 수면과 식욕이 달라지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도 출근하고 맡은 일을 계속 수행할 수 있습니다. 책임감이나 기존의 생활 패턴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전과 비슷하게 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직장에서 업무를 해내는지 여부 하나만으로 마음 상태를 판단하기보다, 혼자 있을 때의 감정과 흥미, 피로, 수면, 집중력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기능성 우울증’은 어떤 상태를 뜻할까?
‘고기능성 우울증’이라는 표현은 일상이나 직업적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우울감, 공허감, 흥미 저하, 피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다만 ‘고기능성 우울증’ 자체가 별도의 공식 정신건강 진단명은 아닙니다. 실제 진료에서는 이 표현만으로 상태를 판단하지 않고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생활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합니다.
또 “회사에 잘 다니면 고기능성 우울증”이라고 단순하게 구분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사람도 업무는 수행하면서 가족관계나 여가, 수면 같은 다른 영역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퇴근 후 피곤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우울장애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증상의 종류와 지속 기간, 반복되는 양상,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직장인 번아웃과는 무엇이 다를까?

번아웃과 우울 증상은 피로와 무기력, 집중하기 어려운 느낌처럼 일부 경험이 겹칠 수 있어 스스로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번아웃은 주로 오랫동안 이어진 직장 스트레스와 관련된 직업적 현상으로 설명됩니다.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일에 대한 거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 업무 효능감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구분할 때는 먼저 어려움이 주로 업무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업무 부담이 줄었을 때 상태가 나아지는지, 쉬는 날이나 휴가 뒤 어느 정도 회복되는지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차이는 상태를 이해하는 단서일 뿐, 한 가지 특징만으로 번아웃과 우울증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일뿐 아니라 예전에 즐기던 취미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흥미가 줄고, 쉬는 날에도 공허감이나 자책이 지속되거나 수면·식욕·집중력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업무 스트레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상태가 함께 나타날 수도 있고 수면 부족이나 불안, 다른 건강 상태가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어 여러 변화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잘 버티는 사람은 상태를 늦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업무 수행 능력이 유지되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맡은 일을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평소처럼 출근하고, 정해진 일정을 계속 수행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업무상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본인 역시 “그래도 출근은 하고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하다가 퇴근한 뒤에야 피로와 무기력, 공허감이 두드러지는 패턴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 상태는 기능이 완전히 무너진 뒤에만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일을 유지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업무 외 생활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퇴근 후 무기력과 공허감이 반복될 때 살펴볼 변화
다음 항목은 고기능성 우울증이나 우울장애를 스스로 진단하기 위한 기준이 아닙니다. 최근 자신의 감정과 생활 패턴이 이전과 달라졌는지 확인할 때 참고할 수 있습니다.
□ 예전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늘었다
— 단순한 휴식 욕구인지, 활동에 대한 의욕 저하가 반복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좋아하던 활동을 해도 즐거움이 이전보다 줄었다
— 취미나 여가에서 느끼던 흥미가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출근과 업무는 하지만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어렵다
— 업무를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이전보다 커졌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잠을 자도 피로감이나 에너지 저하가 계속된다
—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 낮 동안의 피로를 함께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 집중하기 어렵거나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 업무 효율이나 일상적인 판단에 변화가 생겼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특별한 이유 없이 공허하거나 자책하는 일이 늘었다
— 감정 변화가 일시적인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하는 일이 이전보다 버겁게 느껴진다
— 업무 외 사회생활이나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몇 개에 해당하는지만으로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과 달라진 변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으며 업무뿐 아니라 수면, 관계, 여가와 같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증상과 생활 변화를 먼저 확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특정 검사부터 시행해 우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면담을 통해 현재 상태를 확인합니다.
우울하거나 공허한 느낌이 언제 시작됐는지, 하루 중 어느 때 두드러지는지,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면이나 식사, 집중력에 변화가 있는지와 최근 업무량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달라졌는지도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지도 확인하지만 그것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퇴근 후 생활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취미 활동처럼 업무 밖의 기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심리검사나 인지기능 평가, 뇌파검사 등 추가적인 평가가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검사만으로 우울 상태나 ‘고기능성 우울’을 진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면담에서 확인한 증상 양상과 지속 기간, 수면과 생활 변화, 업무·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 필요한 경우 추가 평가 결과 등을 종합해 현재 상태를 살펴봅니다.
치료 방향은 현재 어려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평가 이후의 방향은 현재 증상의 종류와 지속 기간, 생활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담이나 수면·생활리듬 조정, 인지행동적 접근을 고려할 수 있고, 필요하면 약물치료 등 다른 치료 방법이 함께 검토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기능성 우울증’이라는 표현 자체에 맞춰 치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증상이 지속되고 있고 현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바탕으로 치료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일을 해낼 수 있는지만으로 마음 상태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출근하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까지 괜찮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반대로 퇴근 후 피곤하거나 며칠간 의욕이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우울장애라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과 달라진 공허감이나 흥미 저하, 피로, 수면과 집중력 변화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고 있으며 업무 밖의 생활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잘 버티고 있는지보다 내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현재 마음 상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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